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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수건

클레르 2020. 5. 17. 12:19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해골산 언덕길을 오르는 모습을 지켜본 베로니카는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용감하게 예수님께 다가가 수건으로 얼굴에 흐르는 피땀을 닦아드렸는데 거기에 예수님의 얼굴이 찍혔다. 십자가의 길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리다”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베로니카의 수건>이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세 말부터이다. 화가들이 그린 예수님의 얼굴을 성안(Volto Santo, 聖顔)이라고 부르는데 보통은 가시관을 쓴 모습이지만 때로는 가시관 없이 그려지기도 한다. 14처가 오늘날의 내용으로 만들어진 것은 1731년 교황 클레멘스 12세 때이며 이때부터 베로니카에 대한 공경도 뜨거워졌다고 한다. 

 

작가 ¶ 엘 그레코

제목  「수건을 든 베로니카」

년도   1577-80

종류  캔버스에 유채

크기  84x91cm

소장  산타 크루즈 성당, 톨레도

  
<수건을 든 베로니카>   

엘 그레코의 그림에서 베로니카는 두 손으로 가시관을 쓴 예수님의 얼굴이 찍힌 수건을 들고 있다. 정면을 향하고 있는 예수님은 그림을 보는 관람자의 눈과 딱 마주치고 있다. 반면 수건을 들고 있는 베로니카는 슬픔에 젖은 표정으로 화면 밖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역할은 예수님의 얼굴이 찍힌 수건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 이상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그림 속 주인공 자리를 예수님께 온전히 내어드린 것이다. 

베로니카가 들고 있는 수건의 주름은 너무나 정교하게 그려졌다. 배경은 이 시대 그림으로는 드물게 완전히 검게 처리하여 관객의 시선을 베로니카와 예수님에게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화가의 깊은 묵상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성화의 거장 엘 그레코(1541-1614)는 ‘그리스 사람’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이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으나 주된 활동은 스페인 왕실 궁정과 톨레도에서 했다. 엘 그레코는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소집되어 18년간 이어진 트렌토 공의회에서 정비된 가톨릭교회의 개혁정신을 그림으로 설파한 16세기 말 매너리즘 양식의 거장이다.

 

[2019년 7월 14일 연중 제15주일 대구주보 3면,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교구 사목국장)]

 

그림파일 출처 https://www.wga.hu/art/g/greco_el/06/0609grec.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