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세례명의 어원

[4월 11일] 고드베르타 (Godeberta)

클레르 2024. 4. 12. 01:28

성인명 | 고드베르타 (Godeberta)
축일 | 4월 11일
구분 | 성녀
신분 | 동정녀, 수녀원장
활동지역 | 누아용(Noyon 프랑스 북부)
활동연도 | +700년경
같은이름 | 고데베르타, 고스베르타

 



   ‘열정’이란 뜻의 이름을 지닌 성녀 고드베르타는 640년경 프랑스의 아미앵(Amiens)에서 신심 깊은 부모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궁정에 속한 귀족 출신으로 성녀 고드베르타를 신중하게 교육했다. 그리고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 그녀를 궁정으로 데려가서 적절한 지위와 재산을 가진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이렇듯 부모는 그녀가 결혼하기를 강력하게 희망했으나 성녀 고드베르타는 수도 성소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동정을 지키기 위해 결혼을 완강히 반대하여 큰 물의를 일으켰다. 궁정에 있던 누아용의 성 엘리지오(Eligius, 12월 1일) 주교는 그녀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뒤에 자신의 주교 반지를 빼서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주고 나서 그녀가 그리스도의 신부임을 선언하였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녀 고드베르타는 성직자의 지도를 받으며 수도 생활을 시작했고, 그녀의 열정과 행동에 감동한 국왕 클로타르 3세(Chlothar III)는 누아용 근처에 성 제오르지오(Georgius)에게 봉헌한 성당이 있는 궁정 내의 작은 집을 그녀에게 기증하였다.

   성녀 고드베르타는 그 집을 수도원을 만들고 12명의 처녀와 함께 기도와 고행에 전념하며 그 지방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는 데 힘썼다. 그들은 성 엘리지오 주교의 지도를 받았다. 그 지방에 역병이 창궐했을 때 그녀는 성직자들에게 3일간의 금식을 명하도록 간청했고, 병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가 십자가를 그음으로써 역병을 퇴치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누아용에 큰 화재가 발생했을 때 십자성호를 그음으로써 화재로부터 마을을 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성녀 고드베르타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공경을 받았다. 700년경 누아용에서 선종한 그녀는 성 제오르지오 성당에 묻혔다가 12세기에 누아용의 주교좌성당으로 옮겨 안치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중 그녀의 유해와 성 엘리지오 주교가 선물한 반지 등의 유물을 인근에 묻었다가 혁명이 지난 후 다시 주교좌성당으로 옮겨 모셨다. 성녀 고드베르타는 전염병과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재난의 시기에 특별히 보호를 청하는 성인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 

 

고테베르타(Gotheberta), 고토베르타(Gothoberta)로도 불리는 성녀 고드베르타는 프랑스 누아용에서 4월 11일 또는 6월 11일에 축일을 지내왔으나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을 수는 없다.

 


Name Origin & Meaning 

 

기원 : Germanic (게르만)
루트 : *Gudą *Berhtaz > Godeberth
의미 : (신성한 존재 + 빛)
This name derives from the Old High German “Godeberth,” composed of two elements: “*gudą” (god, deity, divine being) plus “*berhtaz” (light, bright, clear, shining one). Gosbert was an East Franconian duke in the Franconian Empire, ruled in Würzburg, and became one of the first Christians of the region. 

Saint Gosbert of Osnabruck was a spiritual student of Saint Anskar. He worked as a missionary with Saint Nithard. Bishop of Osnabruck, Germany from where he supported more missionary work in Sweden. 

Saint Godeberta (Godebertha, Godberta) (~640–700) was a Frankish saint. She was born at Boves, near Amiens, to a noble family that was associated with the court of Clovis II. With the support of Saint Eligius, Godeberta became a nun even though her parents wanted her to marry.

 Godepert king of the Lombards (crowned 661), eldest son and successor of Aripert I. He was an Arian who governed from the ancient capital, Pavia. At the same time, his brother, Perctarit, a Roman Catholic, ruled from Milan.


이 이름은 고대 고지 독일어 "Godeberth"에서 유래되었으며 "*gudą"(신, 하느님, 신성한 존재)와 "*berhtaz"(빛, 밝음, 맑음, 빛나는 것)의 두 요소로 구성됩니다. 고스베르트는 프랑코니아 제국의 동프랑코 공작으로 뷔르츠부르크를 통치했으며 이 지역 최초의 기독교인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Osnabruck의 Saint Gosbert는 Saint Anskar의 영적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Saint Nithard와 함께 선교사로 일했습니다. 독일 오스나브루크의 주교는 스웨덴에서 더 많은 선교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성 고데베르타(Godebertha, Godberta)(~640~700)는 프랑크족의 성자였습니다. 그녀는 아미앵(Amiens) 근처의 보베(Boves)에서 클로비스 2세(Clovis II)의 궁정과 관련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Saint Eligius의 지원으로 Godeberta는 부모님이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수녀가되었습니다. 

 롬바르드족의 고데퍼트 왕(왕위 661), 아리페르트 1세의 장남이자 후계자. 그는 고대 수도 파비아에서 통치했던 아리우스파였다. 동시에 로마 카톨릭 신자인 그의 형제 Perctarit가 밀라노를 통치했습니다.